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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출소

eeellu 2024. 11. 1. 22:06

순백의 두부 한 모를 받아든다.

 

입김이 나오는 날 처음 입구에 섰다.

높은 담장 사이로 네모난 건물들 사이로 펼쳐진 운동장.

가지런히 늘어놓은 이름표 사이 숫자들.

 

창구 앞에서 흥정하는 굵고 가는 목소리들. 

얼마까지 생각해봤냐는 질문에 셋을 답한다.

하나는 휘이익 허공을 가르는 막대기 소리.

둘은 누런 생명 사이로 내리꽂히는 붉은 인습.

셋은 값을 잘 치뤘다는 확인의 비명.

 

비용을 지불하고 얻은 포상은 달콤했다.

어제는 머리가 바닥에 붙은 지렁이도 되었고

오늘은 두 팔을 쭉 뻗고 하늘을 날기도 했다.

내일은 두 다리를 모아 뛰는 캥거루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내 귀를 팔고 내 입을 팔고 내 혀를 팔고 내 눈을 팔고

내 손을 팔고 내 팔을 팔고 내 다리를 팔고 마침내 내 가슴을 팔고

 

두부 한 입 베어 물고는 마음 속으로 외친다.

다시는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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