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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어느 세상에 사는가

eeellu 2019. 5. 19. 22:46

1.

두 가지 공간이 놓여있다. 한 공간은 "해야 하는" 공간이고, 나머지 하나는 "하고 싶은" 공간이다.

그리고 내 우울증은 하고 싶은 공간의 기저를 해야 하는 공간으로 옮기는 선형 사상을 제공하겠지.

그리고 나는 해야만 하는 일에 치여 죽고 말거야.

그렇게 나는 내 인생에 치이고, 내게 차인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버리고.....

그렇게 나는 없어지고 만다는 이야기를 막기 위해서는

Linear Extension Theorem을 부정해야겠지만....

아마도 꿈속에서는 그런 공리계가 있겠지.

 

아마도 기분에도 기저가 있다면, 양극성장애의 조층삽화와 우울삽화가 기분의 기저일까?

둘의 적절한 혼합은 기분을 모두 표현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2.

단 한번도 읽히지 않을 글. 그런 글은 왜 쓰이는가.

내 블로그 글들에게 미안하다.

 

3.

세상에 날 때부터 지닌 죄. 운명. 

종교와 감성은 운명에 순응하라 가르치고, 과학과 이성은 운명에 저항하라고 가르친다.

나는 이미 감성의 강을 건너기로 다짐했지만, 불안은 나를 여전히 붙잡는다. 저 먼길 갈 수 있겠냐며 회유한다.

세상을 받아들이고, 그저 웃고 떠들라고 하는데, 그 유혹을 뿌리친다.

무섭다. 처절하게 어둡다.

컴컴한 터널을 혼자서 걷고 또 걷는다. 희미한 빛 사라지고, 빛 아닌 것도 사라진다.

남는 것은 나. 생각해본 나와 생각해보지 않은 나.

생각해보지 않은 나는 나의 심연이오, 생각해본 나는 나의 의식이 되어 나를 비춘다.

하지만 빛 없는 곳에서 거울은 무용지물이다.

 

4.

왜 더이상 긴 글을 쓸 수 없지?

10페이지의 글은 써 내던 나는 어디로 간 것인가?

 

 

PS.

그 인생의 안전선은 저편이겠지만, 내 인생의 안전선은 이편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나의 행동은 정당화되지 않겠지.

그 누구도 보지 않는 글을 오늘도 한자 한자 적어내는 일에 이골이 났지만, 그래도 한 자 남기는 것이 의미가 있겠지.

 

나는 내편인 세상에 사는가, 아니면 네편인 세상에서 사는가.

슬픔마져 닳아버린 세상.

슬프다고 하는데, 슬퍼야 하는데, 내 슬픔은 가슴의 통증으로 대체된 것일까.

약 봉지만이 내 시선에 들어온다.

 

나는 그 사이에 여러 사람의 인생 일부를 책임지게 되었다.

그 일들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이 늘어났다는 것이니까.

문제는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늘어만 간다는 것이다.

매일마다 물리와 수학 문제를 풀며 보내야 하는 삶이 긍정적일까?

이러다가는 내가 서울의대를 가는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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