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사담

옛날 글 하나...

eeellu 2020. 6. 28. 02:06

1.
무지개같은세상을보며서러워울었다.

2.
언제부턴가 하늘은 잿빛이였다. 아니 잿빛이 아닌것이 없었다. 명암의 대비만이 남아있는 세계에서 모든것은 이산적이고 베타적이였다. 사실 나는 잿빛이 아닌 세상을 본 적이 없다. 화사하고 다채로운 색으로 가득찼을 세상은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책에만 남아있었고, 이나마도 지금은 없어졌다.

나는 오늘도 온기라곤 없는 수도꼭지를 붙잡으며 하루를 맞을 준비를 했다. 아무리 문질러도 나오지 않는 거품을 모아서는 머리를 감았다. 사실 내게 감을 머리카락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상관없는 일이다. 이마저도 포기한다면 내 삶에서 포기되지 않은 일이 있겠냐는 생각이 이런 관습적인 일에 나를 목매달게 하나보다.

오늘도 일을 찾아 밖으로 나왔다. 빨간 머리에 빼빼마른 성냥들이 성냥갑에서 나와 줄지어 어디론가 가고 있다. 그래도 그들은 이 세상에서 쓸모있는 귀중한 존재들이다. 불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겠는가. 사실 내가 원했다면 번듯한 직장에서 목에 힘을 주며 펜대를 굴릴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렇지 못한 이유는 나 자신만이 알것이다. 당연하다는 일이 당연하지 않았던 이유를 남에게 한탄한다고 해서 고처질까? 그런 의문은 나에게 2+2를 4라 말할 자유를 주지 않는 세상에서 사치였다.

이렇게 배회하다가는 어느순간 잡혀서 갇힐것이다. 나는 그렇다면 목숨을 구걸하며 다른 곳으로 실려갈 것이다. 나는 또다시 치료라는 명목하에 굽어봄을 당하고서는 내가 몰랐던 내 자신앞에 무릎을 굽히고선 공연히 눈물지울 것이다. 이런 무기력감이 나를 감싸서 하무하게 하늘을 올려다 볼 때, 양손이 묶여서는 다시 어딘가로 끌려가게 되었다.

3.

기대했던 곳과는 달랐다. 그 누구도 바라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형식적으로 그려냈을 벽화들과 끊임없이 울려퍼지던 비명과 노랫소리도 없었다. 대신 그곳을 체운 것은 하얀 벽, 화려한 침묵이였다. 침묵속에 놓여진 나는 이 특별한 기회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몰랐다. 빈 공간을 가득 체워낸 상념들은 날이 서 있었다. 상념들은 내 마음속 풍경에 푸른 하늘과 푸른 초원을 그려냈다. 그리고 그 드넓은 대지를 뛰어놀던 양이 있었다. 나는 그 양을 잘 키워낼 자신이 없었다. 양들의 털이 따뜻하다고 해서 양들의 털을 깎을 권리가 인간에게 있을까? 합성섬유를 자아낼 수 있는 인간의 기술력이라면 그들을 털을 만드는 수고스러운 일에서 해방시켜 줘야 하는 것 아닐까? 아니면 이조차도 종우월주의에 젖어있는 편협한 사고에 증거가 되지 않을까? 어쩌면 내가 인간인지 모르는데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있을까? 어쩌면 인간과 양이라는 구분 조차도 에매한 것이 아닐까? 어쩌면 인간이라는 구분 조차도 배타적이고 이산적이기 보다는 연속적인 스팩트럼에 의존해야 하는 것 아닐까? '저는 인간입니다'라는 설명 이전에 '저는 70%는 인간으로, 30%는 양으로 제 자신을 생각합니다' 라는 말이 자연스러워 지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시간은 한정없이 지나갔고, 나는 내 마음속 세계에 첨단 문명의 이기 속에서 갈등하는 원숭이 한마리를 그리고 있을 때 였다. 정장을 차려입은 한 사람이 서류뭉치와 펜을 들고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나에게 서류뭉치에 적혀있는 문제를 풀라고 요구했다. 그 문제들은 쉬웠다. 진달래 꽃은 여성화자의 애상적인 어조로 한국인의 한의 정서를 표현한다. (O/X) 서 부터 3*33을 10으로 나눈 나머지는 9이다 (O/X)를 비롯한 산수, 아니면 인간의 염색체는 46개의 상염색체와 2개의 성 염색체로 구성된다 (O/X)와 같은 과학 문제들 이였다. 문제 자체를 푸는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저 손이 가는데로 답을 적고서는 답지를 내밀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미련없이 답지를 낚아체서는 나를 침실로 인도했다.

4.

일어나 보니 멍했다. 아무 감각도 없는 감각은 너무나도 강렬한 감각이었다. 하얀 벽을 둘러보던 내 눈동자는 작은 먼지 한톨을 발견하고는 기뻐하고, 그것마저도 허상이라는 것을 알아내고는 슬퍼했다. 문 옆에 구멍으로 음식과 서신 한통이 들어왔다. 무미건조한 음식을 씹어 삼키며 열어본 서신에는 "연필을 다 쓸때 쯤 연락을 주겠소"라고 적혀있었으며, 내가 풀어냈던 문제와 답, 그리고 연필 12자루가 첨부되어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서는 연필을 잡고서는 문제와 답을 다시 살펴봤다. 답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체점 결과는 한 문제도 맞추지 못했다고 적혀있었다. 나는 당황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연필을 잡고서는 내가 푼 답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갔다. 식사는 여전히 무미건조 해갔고, 나는 느낌없는 느낌에 몸서리를 치며 기계적으로 연필로 무언가를 적어가고 있었다. 내가 틀린 이유를 찾아내는 과정은 진척이 있었다. 나는 2+2를 4라 적는 실수를 하고 있었다. 나는 빛의 속력이 무한하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나는 다시 생각해 보니까 아는게 없었다. 내가 이러한 빈약한 지식으로 지성인이라고 나불대고 다녔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져서 다시 연필을 휘갈기고 있었다. 그 순간 내 앞에 놓인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나는 빛에는 색이 있다고 적었고, 그래서 그 문제를 틀렸다. 나는 내가 틀린 이유를 정말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사실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문득 회의감이 몰려왔다. 나는 꼭 흰 벽에서 무지개를 본것만도 같았다. 흰 벽을 갖고있는 연필로 긁어봤다. 그 벽에는 아무런 색도 없었다. 나는 그 무지개가 두려웠다. 내가 드디어 허상을 보는 것만 같았다. 흰 벽을 아무리 뚫어져라 쳐다봐도 그 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순수한 백색의 벽. 그 벽은 내 앞을 가로막았다.

5.

나는 그 순간 그 고요의 방에서 나가고 싶었다. 남아있던 세 자루의 연필을 양손에 움켜쥐고는 남은 종이에 아무렇게나 긁어 댔다. 연필의 긁히는 소리가 그 정적을 깼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바닥이 흑연으로 흥건할 때 나는 드디어 긁을 연필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렇게 나갈 수 있다는 안도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문이 열리고 검은 정장의 사람은 내 손을 낚아채서는 밖으로 끌고갔다. 드디어 무감각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쁨 이전에 나를 반겨준 것은 무지개였다. 프리즘에 반사된 빛은 화려한 스팩트럼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그냥 삶을 그만두고 싶었다. 무지개 같은 세상에서 살고 싶었다. 나는 그 화려한 불빛을 바라보며 죽여달라고 절규했다.

'사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실 삶이란 부질 없는 것 아닐까.  (0) 2020.08.10
Go to Galaxy... Where is my home?  (0) 2020.07.18
오랫만에...  (0) 2020.05.17
나는 왜 쫓겨나고 싶었을까.  (0) 2019.07.23
수능? 순응?  (0) 2019.07.07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5/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