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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12월의 일기

eeellu 2024. 12. 26. 13:45

12/3

평온하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 대화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계엄령을 내렸다는 말을 누군가가 급하게 했다. 믿을 수 없었다.

그런 거짓말은 하면 안된다고 하면서, 인터넷 뉴스를 들어갔다. 속보로 올라왔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위기의 상황에서 무엇이라도 해야 했었다.

A4용지에 계엄령을 철폐하라 구호를 인쇄했다. 집 문을 나섰다.

지금 당장 국회로 와야 한다는 말을 듣고서 국회로 향했다.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경찰이 문을 막고 있는 것이 보였다.

경황이 없어서 일단 정문으로 갔다. 그 앞에서 항의를 하고,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처음에는 몇 명 있지도 않았지만, 점점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렇게 경찰 차벽과 국회 정문 사이에 사람들이 모여있는데, 헬기 소리가 들렸다.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는 헬기가 내 머리 위를 지나가서는 국회 안으로 들어갔다.

몇번이고 왔다갔다하는 모습을 보며 약간은 두려웠다. 만약 계엄이 해제되지 않는다면?

나는 아마도 버스에 실리어서는 어딘가로 끌려가지 않을까? 불안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옳은 일을 해야 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자리를 지키고 서는 것이었다.

그날 따라 인터넷은 왜이리 잘 안되는지, 돌아가는 상황 조차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주변에서 이겼다고, 계엄 해제 결의안이 통과되었다는 말이 들려왔다.

하지만 믿을 수 없었다. 대통령이 계엄 해제 통고를 하기 전까지는 계속 버티어 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2시가 지나갈 즈음, 쑤셔오는 삭신과 그 다음날 봐야 할 시험이 생각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피곤했다. 하지만 거대한 물결을 막아냈다는 기쁨과,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두려움이 몰려와 잠을 쉬이 이룰 수 없었다.

 

12/7

국회 앞 집회에 참석하였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곁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과 환희가 살짝은 느껴졌다.

과연 이 광장에서 내 존재는 지워지지 않을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며 자유발언을 한 귀로 흘려가며 앉아있었다.

약간 두려웠다. 탄핵 안이 통과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내 머리를 떠나지를 않았다.

내란 동조 국회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떠나면서, 사람들도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 또한 그렇게 떠나갈 수는 없었다. 선한 이 8명은 더 있겠지라는 믿음이었을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결국 탄핵안은 통과되지 아니하였다. 실망 이전에 공포가 있었다.

쿠데타가 실패하였음에도 대통령은 무엇이든 더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2차 계엄을 내리지는 않을까? 이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발포하지 않으리라는 믿음마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공식적인 집회가 끝나고 돌아갔다.

 

12/14

가족 몇과 함께 집회에 참가하였다. 같이 나란히 앉아 몇시간이고 있었다.

여당 국회의원 11명이 찬성할 것이라는 신문지를 쥐어들고서는 그 말이 맞기를, 아니 11명보다 더 많이 나와서 틀릴 것이라 바랐다.

하지만 그런 바람은 산산히 박살났다. 12명. 이렇게 큰 시도를 하였음에도 96명은 그 이를 감싸는구나.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서 자신의 마음, 양심을 상하게 하는구나.

가결되었다는 기쁨을 품으면서도, 이 광장은 언제까지 따뜻한 곳일지 걱정이 되었다.

 

12/21

상당히 지쳐있었다. 지난 상황들을 바라보며 지낸 시간들, 그리고 당장 닥친 과제를 처리하느라 보낸 시간들.

그 사이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두어야 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연구들.

그저 방 안에서 쉬려고 했다. 며칠간 방치했던 쓰레기들을 주섬주섬 정리했다. 밀린 빨래를 해치우느라 시끄럽게도 돌아가던 세탁기 소리를 들으면서 내 자신이 생활인이라는 생각에 젖어있었다.

그러다 남태령에 방문하게 되었다. 잠깐 있다 올 생각이었다.

11시가 넘어가고 사람들이 줄어들고, 이 앞에 막혀있는 경찰 차벽이 그렇게도 폭압적으로 느껴지면서 그 자리를 뜰 수 없었다.

결국은 별 준비도 되이 않은 상황에서 그 추운 도로에서 밤을 지세웠다.

도움의 손길은 따뜻했다. 언제 수방사 앞에 도로에 앉아 경찰 차벽을 반찬삼아서 따뜻한 피자를 다 먹어보겠는가.

따뜻한 마음과 별개로 그 춥디 추운 겨울 바람을 맞아가면서 있으니 정신이 흐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6시쯤 눈을 감았다. 갑자기 세상이 포근해지는 느낌과, 이 자리에서 그대로 누워 잘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위험하다는 생각에 바로 지하철로 향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잠을 청했다.

일어난 다음에 일을 하면서도, 현장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에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결국은 차벽이 열렸다고. 사람들이 행진했다고. 그런 이야기를 보며 마치 내가 승리한 것마냥 기뻤다. 그 형형색색의 사람들이 마주앉아 우리가 버텨냈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두려웠다. 앞으로 내가 해쳐가야할 길은 그렇게 따뜻한 마음도, 많은 연대의 손길도, 승리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냉소를 마주보며 나아가는 길은 또 얼마나 지리할지 눈을 감고만 싶었다.

 

12/25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폭력을 향한 서늘하고도 서정적인 묘사에 페이지를 넘기기가 무서워 계속 눈을 감았다.

하지만 눈을 감았다 떠도 그 이야기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그 고통도 슬픔도 그리하였겠지.

나는 그 책을 은연중에 계속 피해오고 있었을지 모른다. 지금까지 지식으로 접했던 사실들에 근거한 마음아픈 이야기라고 피상적으로만 생각했다.

12월 3일을 겪고 나서야 드디어 온전하게 그 책의 마디 마디에 집중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보고 들었던 사실들의 나열이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미안했다.

 

12/29

어떻게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아침에 일어나 세상 돌아가는 일을 보며 또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백주대낮에 사람들이 이렇게나 쉽게 명을 달리하게 되었다니.

 

그 슬픔마저 한발 비껴서서는 혐오의 논리에 벽돌 한장을 끼우는 사람들을 보며 또 다시 놀랐다.

이 또한 자본의 논리로 해석되어 지역 혐오와 부의 숭배의 수단으로 악용된다니.

이런 세상에서 눈을 뜨면서 살아야 한다니.

 

12/31

이렇게 결국 한 해를 끝맺게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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