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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ct. f/0.95. 어둠 속 미약한 빛이나마 받아들이고자 하는 집념. 고감도와 강력한 손떨림 방지 기술을 제공하는 디지털 카메라의 능력과 별개로, 광학적으로 끝을 보고자 했던 지난 세월의 종착지. '감성'이 아닌, f/0.95에서 실용적인 화질을 제공하는 사실상 유일한 카메라 렌즈.

광학적인 성능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어떤 조리개 값, 어떠한 거리에서도 항상 만족스러운 화질을 보인다. 잘 억제된 구면수차 및 색수차, 비네팅과 왜곡 등 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깝다.

 

이 밑의 후기는

1. 35mm 정도면 표준이고, 50mm 는 준망원이라 생각하는 사람

2. 초상 사진은 전혀 찍지 않는 사람

3. 배경을 날리는 사진을 많이 찍지 않는 사람

이 생각하는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녹트가 아닌 최신의 단렌즈, 하물며 최고급 줌렌즈만 하여도 4500만 화소의 카메라에서 보기에는 충분한 선예도를 보여준다. 조리개를 4 이상 조였을 때의 화질을 논하면서 이 렌즈만의 장점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실험실과 같은 통제된 환경에서야 차이가 느껴지겠지만, 우리는 사진을 찍기 위해 렌즈를 사지, 렌즈를 사기 위해 사진을 찍지는 않으니까.

그렇다면 이 렌즈가 빛을 발하는 순간은, 극히 어두운 공간에서 찰나를 잡아내려고 할 때이다. 그러나 어두운 경우에도 사용은 극히 제한적이다.

1. 심도의 문제

종이 한 장 두께정도 밖에 안되는 극히 얇은 심도는, 배경을 흐려지게 할 목적이 아니고서야 항상 장애물만 된다. 얕은 심도에서 화상 대부분에 초점이 맞게 하려면, 의도적으로 평면적인 구도를 잡고, 피사체를 비교적 멀리 두어야만 한다. 이를 어기고 심도 확보를 위해 조리개를 2.0 이상 조이는 순간, 다른 렌즈들에 비해서 얻는 이점이 없어진다.

2. MF의 문제

개방한 조리개로 셔터스피드를 올려서 찍으려면 문제가 생긴다. 이 렌즈는 MF이다. 빠른 셔터스피드가 필요한 상황, 즉 움직이는 물체를 촬영하는 상황에서 수동초점으로 원하는 초점을 잡기는 어렵다. 미리 목표하는 곳에 초점을 두고, 피사체가 지나가는 순간에 연사로 찍을 수밖에 없다. 감도의 여유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AF가 되는 렌즈를 이용하고 감도를 높이는 것이 원하는 사진을 건질 확률이 높지 않을까?

3. 느린 셔터스피드의 사용

움직이지 않는 피사체를 찍는다면, 최신의 손떨림 방지 기술을 믿고 셔터스피드를 늦출 수 있다. Z7에 50mm f/1.2 렌즈를 사용할 때에도 1/5s 정도로는 손쉽게 핸드헬드 촬영이 가능했다. 앞으로의 기술 발전과, 타사의 손떨림 방지 성능을 고려하면 조만간 50mm 화각에서도 4초 정도는 핸드헬드로 촬영이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셔터스피드를 낮출 수 있다면 조리개를 열지 않아도 충분한 감도를 확보할 수 있다.

4. 화각의 문제

58mm 보다 더 광각의 렌즈를 사용하면 1, 3번 문제가 완화된다. 초점거리가 짧으니 심도도 깊어지고, 광각이니 셔터스피드도 더 느리게 가져갈 수 있다.

 

결론:

F0.95에서 가능한 최저의 셔터스피드로 두고 나서도, ISO 6400 이상으로 찍어야만 하는 상황에서야 Noct 렌즈가 있어야만 찍을 수 있는 사진이 나온다. 이보다 밝은 상황에서는 더 어두운 렌즈로도 결과물을 낼 수 있을 것이고, Noct 렌즈가 있더라도 보통 조리개를 조이게 될테니. 그렇다고 그 '결정적 순간'을 위해서 이 렌즈를 항시 휴대하기에는 2kg에 육박하는 무게가 부담이다.

나야 사람이나 움직이는 피사체를 찍을 일이 거의 없으니, MF는 부담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화각과 무게에 있다. 만약 이 렌즈가 35mm F1.0 정도였다면 지금보다 더 만족스러울 것이다. 35mm면 렌즈 하나로 거의 모든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테니까. 그런데 58mm 화각은 (나에게는) 다른 렌즈를 같이 들고다니기를 강요한다. 그런데 58mm렌즈가 굳이 필요한 순간, 그리고 f/0.95가 굳이 필요한 순간만을 위하여 2kg를 추가로 들고다니기는 대단한 결심이 필요하다.

이 렌즈를 판매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렌즈를 '소유'하는 것은 아주 만족스럽다. 금속 재질의 외관을 바라보다, 물리적으로 연결된 초점 링을 돌리는 순간 말하기 어려운 기쁨이 차오른다. 가끔씩 f0.95로 배경을 날리면 짜릿하다. 찍기 어려웠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좋다. 그러나 이 렌즈가 내 사진 생활을 완전히 바꿔놓지는 못할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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